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5 석기시대로 돌아간 레바논

RyanDaddy 2021. 10. 1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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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인 정전 사태, 암흑으로 뒤덮인 도시

2021년 10월 9일 토요일 정오, 하루 전 가동 중단된 Deir Ammar 발전소에 이어 Zahrani 발전소가 가동을 완전히 멈췄다. 발전소에 더 이상 연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 두 주요 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현재 전력 생산량은 하루 270 MWh(270 메가와트, 2억 7천만 와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레바논 인구 680만명의 정상적인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일일 전력량은 42 GWh(=42,000 메가와트, 420억 와트)로 전력 공급량이 수요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 정도의 전력으로는 일부 지역에 단전 조치를 하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전력망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2021년 10월 9일 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전력공사 사옥 간판에는 아직 불이 켜진 아이러니

 

세계은행, "레바논은 현재 지구 상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 나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토요일에 연료가 항구에 도착했지만, 주말이니 하역 작업은 평일이 되어야 시작할 것이고 발전소에 공급되기까지는 며칠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연료 부족으로 전국적인 정전 사태가 발생 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올해 들어 전력공급 부족으로 수도 베이루트를 포함해 하루 몇 시간씩 전력 공급을 제한했었고, 여름 들어서는 하루 2~3시간만 전기가 공급되었다.

 

13개월의 정치 공백 후 올해 9월에 구성 된 신정부는 임박한 재앙을 막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자흐라니 발전소를 마지막까지 가동했던 연료는 두달 전 이라크에 코로나 19 치료를 돕는 의료진을 파견하고 그 대가로 받아온 중유 100만 톤이었다. 전쟁 중인 시리아 영토와 영해를 통과 해 요르단에서 전기를 들여오고, 이집트에서 천연가스를 사 오는 등의 자구책도 나왔다.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10월 9일의 단전은 심지어 전문가들이 연료소모량을 계산 해 "10월 중순 전에 단전"이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시점까지 정확하게 예견된 일이었다. 그리고 정부는 이 예고된 재앙을 막지 못했다. 

 

레바논은 수년 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작금의 상황을 촉발한 것은 시리아 내전, 이란 제재 등의 외부 요인이 맞다. 그런 부분은 앞선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이제 내각이 구성되었고 미국 정권도 바뀌어 대이란 경제제재가 완화 될 기대감에 일각에서는 레바논 상황에 대한 낙관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레바논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위의 포스팅에서 꼬집었듯,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근본적 원인은 부패한 정치 엘리트들, 그래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정부, 그렇게 사회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분열된 채 생존의 절박함과 이기심에 매몰되어가고 있다.

 

작년 8월 세계를 경악케 한 베이루트 항의 폭발 사고. 항구 한편에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6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폭발해 150여 명이 죽고 6천여 명이 다쳤다. 폭발물의 위험성과 처리 요청이 총리실까지 보고 되었지만 아무 조치가 없었던 것이 사고 이후에 밝혀졌다. 미국이 중동에서 벌이는 파워게임과 도심 한복판에 수년간 폭발물을 방치하는 행정 무능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020년 8월 4일 오후 6시 8분, 거대한 폭발은 항구 옆을 지나던 퇴근길 차량들을 집어삼켰다

이번 정전 사태도 그렇다. 외환보유고는 이미 바닥이고 발전소를 가동할 연료가 부족했지만 돈이 없어 제때 구입하지 못해 며칠간의 "틈새"가 생긴 것이라는 식의 정부 발표. 관공서, 금융기관, 공항은 물론 병원의 비상 발전기 연료도 곧 바닥날 것이다. 국가가 기능하지 않는 그 틈새에 생명유지 장치에 의지하고 있는 중환자들은 어떻게 된 단 말인가? 인터넷과 모든 통신망도 끊어질 것이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경찰이나 구급차를 부르려면 거기까지 달려가야 한다. 

 

 

더 가관인 것은 며칠간의 임시방편으로 군용 비축유를 언급하면서, 사전에 비축유를 사용할 준비를 하지 않아 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데에도 며칠이 걸릴 것이라는 것. 그런데도 연료 선적이 도착한 오늘은 토요일이니 월요일부터 하역이 이루어질 것이라 한다. 이쯤 되면 이게 정부 기관과 정치 엘리트들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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