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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낮 도심에서 총격전, 내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레바논

RyanDaddy 2021. 10. 24.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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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옥상에서 갑자기 총격이 시작되었다.
곧 차를 타고 중무장한 헤즈볼라 대원들이 도착해 응사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총격전은 군대가 출동하고 나서야 진압되었다.

 

국가부도, 대폭발 참사, 전국적인 전력공급 중단, 나라가 붕괴되고 있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지난 목요일에는 백주 대낮에 무장단체들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제 무장단체들은 더 이상 법이나 공권력을 별로 의식하지도 않는 것 같다. 시민들은 과거 온 나라를 피로 물들인 종파 간 내전과 학살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고 있다. 레바논은 이대로 종파 갈등과 폭력의 시대로 돌아가 국가 붕괴 수순을 밟는 것인가?

 

사건 개요

2021년 10월 14일 목요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법무부 근처에는 헤즈볼라 지지자 수백 명이 모여들어 시위를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발생한 베이루트항 폭발 참사의 진상규명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판사 Tarek Bitar의 해임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수사 범위가 헤즈볼라 출신 국회의원들에게까지 확대되어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판사가 사건을 정치화한다"며 비난하여 수사 무산 압력을 넣기 위해서였다. 

 

Tarek Bitar 판사를 비난하는 피켓. 의역하자면 "그는 수사를 망치고 있다"

 

시위대의 시가행진이 동·서 베이루트를 나누는 '타이유네' 지역에 진입했을 무렵, 돌연 인근 건물 옥상에서 정체불명의 저격수들로부터 시위대를 향한 총격이 시작되었다. 시위대는 흩어져 몸을 숨겼고, 일부는 휴대하고 있던 총을 꺼내 들었다. 잠시 후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것은 경찰이 아닌 소총과 RPG로 중무장한 헤즈볼라 대원들이었다. 이들은 도착하는 대로 저격수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방탄헬멧만 빼고 정규군에 필적하는 무장 수준

 

사방으로 총탄이 빗발치고 대전차 로켓이 날아다니는 이 비현실적인 폭력은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이들은 단순히 열혈 당원이나 정당에서 불법적으로 동원한 용역 깡패 수준이 아니었다. 청바지에 나이키를 신고 있지만 정규군 보병 수준의 화력을 가지고 있고, 각종 화기를 다루고 사격하는 훈련을 받은 티가 났다. 

 

방금 발사 된 RPG의 후폭풍 충격파가 지축을 뒤흔들고 있다

 

사방으로 총탄이 빗발치고 대전차 로켓이 날아다니는 이 비현실적인 폭력은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총격전은 레바논 육군의 장갑차가 도착한 뒤에야 진압되었다. 군은 현장에서 총격전에 가담한 헤즈볼라 대원 9명을 체포했고, 당국이 토요일까지 8명의 용의자들을 체포했지만 처음 총격을 시작한 저격수는 잡지 못했다.

 

총격전의 규모를 가늠케하는 수천개의 탄피가 흩어져 있다

 

되살아나는 종파 간 내전의 악몽

'Najib Mikati' 신임총리는 긴급 성명을 통해 자제와 폭력 사용 중단을 요청하였고, 미국과 UN은 성명을 통해 종파 간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시위를 주도했던 헤즈볼라는 즉시 기독교 정당인 CLF (Christian Lebanese Forces)를 최초 총격의 배후로 지목했다. CLF는 이를 부인하였으나 이미 감정의 골은 과거 내전 발발 직전처럼 깊어져 있다. 

 

레바논은 1943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면서 복잡한 종파 구성을 고려하여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가 맡는 권력 분점 구조를 택했다. 중요한 것은 레바논이 자기들끼리 한 나라였던게 아니라 오스만 제국 영토 중 일부를 프랑스가 빼앗아 통치하다가 독립시킨 것이 레바논이 된 것.

 

 

독립 당시는 기독교계 주민의 수가 많았으나 시간이 흘러 인구가 역전되었다. 그러나 종파별로 할당된 권력의 종류와 양은 조정되지 않았다. 결국 기독교 마론파와 시아파 헤즈볼라의 충돌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간, 2006년에 또 한 번, 모두 두 차례 내전의 아픔을 겪었다. 내전은 참혹했다. 1982년 9월엔 기독교 민병대가 무슬림 800~3,500명을 살해하는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이 일어나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이번 총격전은 과거 이 내전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악몽을 되살아나게 하는 충격 그 자체다. AFP 인터뷰에서 두 아이의 엄마인 마리암 다흐르(44)는 “또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는 생각에 두렵다”면서 “같은 일을 다시는 겪을 수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라를 떠나고 싶다”라고 말했다. 사드 알 하리리 전 총리도 트위터에 이번 사태는 15만명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레바논 내전을 떠올리게 한다고 올렸다.

 

이란은 원래의 자리로..

한편, Rami Khoury AUB 교수는 지난 수년간 힘을 키워온 헤즈볼라가 보란 듯이 도를 넘어선 폭력으로 위협을 가해도 이제는 맞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 파죽지세의 헤즈볼라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표현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시아파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은 이라크(시아파 주민이 다수) - 시리아(시아파 집권) - 레바논(인구 1/3이 시아파)을 관통하여 지중해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2011년 아랍 스프링은 이란의 팽창에 기폭제가 되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는 당장 어찌할 수 없었겠지만, 그 너머의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악화된 것은 이란에 절호의 기회였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통해 수세에 몰린 시아파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이란이 군사 자문과 무기를 주면 하면 싸움은 헤즈볼라가 하는 식이었다. 러시아까지 개입하여 결국 아사드 정권이 승리를 굳힐 무렵, 이란은 중동 정세를 좌우하는 패권에 다가섰고 그 매개체가 된 헤즈볼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성해졌다.

 

 

그러나 이란의 패권은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협상 손바닥 뒤집듯 무효화해버렸고 이라크에서 시아파 민병대를 통해 미국 대사관과 주둔 미군을 위협하던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드론 폭격으로 암살했다. 이란이 선을 넘으면 언제든 경제적으로, 필요하면 군사적으로도 응징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그러나 더 확실한 조짐은 더 이상 외세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민중의 의지이다. 이라크 시민들은 10월 총선에서 친이란 성향의 민병대 사령관 하디 알-아미리 대신 반외세 민족주의 성향의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를 택했다. 베이루트에서 뻔히 중무장한 헤즈볼라의 가두행진에 총질하고 헤즈볼라의 선을 넘은 무력 시위에 맞서는 여론이 그 반증이다. 이란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때 까지 일대에서 크고 작은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겠지만, 결국 그 외세를 떨쳐내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의지라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다만 이 격변의 시기에 민중의 삶이 걱정 된다. 나도 여기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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