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Escape

국가부도와 베이루트항 폭발 참사, 이스라엘의 침공까지 2020년부터 레바논에는 악재가 이어졌고, 늦어진 총리 선출, 대통령 임기 종료 후 차기 대권이 공석으로 방치되는 등 사실상 국정 운영이 마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1월 9일, 조셉 아운(60) 레바논 육군 참모총장이 2년 3개월동안 공석이던 레바논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경제위기와 전쟁에 지친 레바논인들은 조심스레 변혁과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기 시작하고 있다.   레바논에는 기독교·수니파(이슬람)·시아파(이슬람) 인구가 고루 분포한다. 이들은 각 종파별로 대통령(기독교)·총리(수니파)·의회의장(시아파) 직을 배정하는 "종파별 권력분점" 정치 체제를 만들어 서로 견제하고 상생을 도모했다. 그런데 이런 레바논을 두고 이해당사국들은 각자의 셈법에..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5. 1. 26. 04:47

헤즈볼라의 허를 찌르는 이른바 "삐삐 폭탄"에 전 세계가 경악 하고 불과 일주일 뒤,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전례 없는 대규모 공습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UN 안보리에 서신을 보내 지상전을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헤즈볼라가 알아서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해 주는 것 뿐이라고 못을 박았다. 불과 2~3주 전, 세계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기대하며 이해 당사국들이 이를 중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스라엘의 레바논을 침공 할 지 모른다는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자는 완전히 묻혀버렸다.  이스라엘에게 숙적 헤즈볼라의 완전한 몰락은 어렵더라도, 그 기세를 한 번 제대로 꺾어놓는다는 정도로 목표를 줄이면 지금만큼 적절한 타이밍은 다시 오기 어렵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에서 쏟아져나온 ..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4. 9. 25. 02:07

후티(반군)는 그저 스스로를 지키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누굴 공격하고 있습니까? 정말 누굴 공격하기나 합니까?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사우디는 예멘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어요. 사우디 등 걸프 국가들, 레바논 장관의 "헛수고" 발언에 발끈 사우디아라비아는 2021년 10월 30일 레바논 정보 장관의 과거 TV 인터뷰 발언이 방영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고 자국 주재 레바논 대사를 출국 조치하였으며, 사우디인의 레바논 여행을 금지하고 레바논산 물품의 수입을 금지하여 사실상의 경제적·외교적 제재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 사건에 사우디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바레인·쿠웨이트·UAE도 외교관 철수 조치에 동참했다. 사우디 외교부 장관은 10월 31일 인터뷰에서..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11. 1. 22:30

건물 옥상에서 갑자기 총격이 시작되었다. 곧 차를 타고 중무장한 헤즈볼라 대원들이 도착해 응사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총격전은 군대가 출동하고 나서야 진압되었다. 국가부도, 대폭발 참사, 전국적인 전력공급 중단, 나라가 붕괴되고 있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지난 목요일에는 백주 대낮에 무장단체들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제 무장단체들은 더 이상 법이나 공권력을 별로 의식하지도 않는 것 같다. 시민들은 과거 온 나라를 피로 물들인 종파 간 내전과 학살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고 있다. 레바논은 이대로 종파 갈등과 폭력의 시대로 돌아가 국가 붕괴 수순을 밟는 것인가? 사건 개요 2021년 10월 14일 목요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법무부 근처에는 헤즈볼라 지지자 수백 명이 모여들어 시위..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10. 24. 23:29

이전 관련 포스팅 "#22 무관심과 절망 속에 다가오는 이라크 총선" 보기 이라크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는 "총선" 이라크는 총선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총리와 대통령, 그리고 국회의장을 선출한다. 의원내각제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며, 종파별로 권력을 분점하고 있기 때문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총리는 인구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에서 선출되고, 대통령은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 쿠르드에서, 수니파를 대표해서는 국회 의장이 선출된다. 가끔 보도기사를 보면 시아파 정당이 의석 다수를 점하게 되어 이제 강경 반미 기조를 보일 것이라는 식의 거의 "오보"에 가까운 내용들이 많은데, 이라크 인구의 60% 이상이 시아파이니 원래 유권자·후보·당선자도 시아파가 많은 것이 정상이고 매년 그래..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10. 13. 14:35

전국적인 정전 사태, 암흑으로 뒤덮인 도시 2021년 10월 9일 토요일 정오, 하루 전 가동 중단된 Deir Ammar 발전소에 이어 Zahrani 발전소가 가동을 완전히 멈췄다. 발전소에 더 이상 연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 두 주요 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현재 전력 생산량은 하루 270 MWh(270 메가와트, 2억 7천만 와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레바논 인구 680만명의 정상적인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일일 전력량은 42 GWh(=42,000 메가와트, 420억 와트)로 전력 공급량이 수요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 정도의 전력으로는 일부 지역에 단전 조치를 하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전력망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세계은행, "레바논은 현재 지구 상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난을..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10. 10. 23:29

2021년 10월 10일, 다음 달에는 이라크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이라크는 의원 내각제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어 총선에서 의회 다수를 점유한 정당의 수장이 총리직을 맡아 행정부를 이끌게 된다. 우리의 대선과 같은 위상이다. 이번 총선은 2003년 미군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이래 여섯 번째로 실시되는 총선이며, 내전으로 파괴된 인프라를 재건하고 지난 30여 년 간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평화와 번영의 문을 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선거이다. 그러나 이 중차대한 선거를 앞두고 이라크의 민심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다. 미군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후 처음 치러진 2005년 총선에서 투표율은 80%에 달했었지만, 시민들은 이후 16년 동안 이어진 정치권의 부정부패, 종파분쟁,..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9. 27. 22:59

IMF 구제금융 도입 없이는 재기 불능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미국 정권이 바뀌었어도 미국이 이란의 팽창을 저지하고 이스라엘과 중동의 안보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명제는 유효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란의 칼끝인 헤즈볼라가 무뎌져야만 한다. 두 번의 총리 사퇴 후 내각 구성이 계속 지연되는 이유 역시 재무 장관직을 헤즈볼라가 포기하지 않고, 타 종파에서 이를 굴복시킬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상태의 레바논에 걸프국이 돈을 퍼줄 리 만무하다. IMF 구제금융 도입 외 레바논 경제가 회생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는데, 구제금융 도입 조건에는 미국의 입김으로 금융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개혁이 포함된다. 돈거래가 투명해지면 헤즈볼라의 자금줄이 막히기 때문에 IMF 구제금융 도입을 실무적으로 수행할 재무부의 수장..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5. 22. 06:00

종파별 권력 분점 레바논의 정치권력은 기독교(대통령), 이슬람 순니파(총리), 이슬람 쉬아파(국회 의장) 이 세 종파가 분리하여 점유하고 있다. 종파 간 내전을 겪은 뒤 분쟁과 유혈 충돌을 막기 위해 권력을 분배한 자구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에 몇 안 되는 요직을 각 종파에 할당하여 결국 종파별 수장 격인 몇몇 유력 가문에 영구적인 권력을 보장한 결과가 되었다. 부연하자면 국정 운영 역량과는 상관 없이 총리는 반드시 150만 명 전후의 순니파 무슬림 인구 내에서만 나와야 한다. 이 안에서 종파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격 유력 인물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19년 10월 29일 경제 파탄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의사를 발표한 제12대 총리 '사드 하리리'는 과거 2009년부터..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5. 20. 12:00

레바논은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나라로 서쪽은 지중해를 접하고 나머지 3면은 시리아와 맞닿아 있다. 면적은 10,452제곱킬로미터로 경기도와 비슷한 크기인데 이 작은 국토 안에 최고 해발 3,088미터, 길이 170킬로미터에 달하는 레바논 산맥이 관통한다. 산맥을 경계로 북쪽과 동쪽으로는 산악 지형이 주를 이룬다. 해안을 따라 접고 길게 늘어선 평야에 고대로부터 발달 한 주요 도시들이 밀집 해 있다.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은 3개월 정도로 짧고 강우가 집중되는 시기이며, 그 밖의 기간은 대체로 맑다. 고저차에 따라 좁은 국토 안에서도 해안과 산간 지역의 기온차가 큰 편으로 산간 지역은 여름에도 선선하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기도 한다. 인구는 2011년까지 420만 명이었으니 시리아 내전 초 급..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5. 15. 07:22

2015년 8월, 한 때 "중동의 파리"라 불리던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도시 인근의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 상태가 되자 정부에서 대체 매립지를 찾지 못한 채 기존 매립지는 포화되어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고 방치되기 시작 한 것이다. 한 여름 무더위에 쓰레기가 부패하면서 온 도시에 악취가 진동을 했고 길가의 폐기물은 도로를 마비시켰다. 곧 쓰레기 처리를 요구하는 민원 시위가 도처에서 발생했다. SNS를 통해 시위는 삽시간에 수만 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었다. 정부는 대체 매립지를 찾고 장기적으로는 국외로 쓰레기를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도심의 쓰레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이 쓰레기 대란은 해프닝으로 일단락이 된 듯 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자 쓰레기가 다..

inside MIDDLE EAST/중동 사설 2021. 5. 12.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