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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 in 50s

by RyanDaddy 2021. 5. 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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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열심히 살았다

나는 중동의 어느 물가 비싼 도시에서 9년 차 월급쟁이를 하고 있는 36세 가장이다. 아내와 세 살 되어 가는 딸, 현지에서 입양한 개 한 마리와 단출하게 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년 다 중동 갔다' 드립 치기 조금 전인 2013년에 중소기업 해외 영업직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이직했다. 1년 남짓 살아본 적 있는 곳이라 딱히 현지 생활에 대한 걱정은 없었고, 해외 근무인 만큼 연봉을 띄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중동 어느 나라의 물가"만" 비싼 도시

그렇게 20대 후반에 이직하고 많이 부족했지만 그만큼 정말 열심히 일했다. 입사 1년을 채웠을 때 성과급과 이런저런 수당을 합쳐 급여는 세후 기준으로 두배 남짓 올랐다. 업무 강도가 상당했고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성실히 일 하고 성과를 내는 만큼 연봉 인상과 빠른 승진이 계속 보장되었다. 평일에는 하루 12~14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도 놀 거리가 없으면 출근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쉴 새 없이 달려 5년이 흐른 뒤 지나자 세후 1억 남짓을 받고 있었다.

 

 

절약보다는 더 벌어서 더 쓰는 것이 좋았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본다. 학창 시절의 나는 술자리를 아주 많이 좋아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았지만 그냥 술이 그 자체로 좋다. 시제가 현재형이다. 아무튼 그 덕에 지출이 컸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군 제대 후에는 일용 노무직을 특히 선호했다. 몸은 좀 고되더라도 근무일에 구애받지 않고 원할 때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고 시급도 높은 편이었으며, 특히 건설 현장에서 새참 시간에 들이켜는 막걸리 한 사발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친구들 대부분은 소위 막일판보다는 주로 과외나 서비스 업종을 선호했지만, 일용 노무직처럼 원하는 때에만 일을 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므로 본업인 학업 외의 시간 투자로 벌 수 있는 금액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주머니 사정이 악화되면 자취방에서 단식 투쟁하며 극단적인 긴축에 돌입했다. 나는 놀고 싶음을 억제하기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군필 복학생이 2007년 기준 일당 7~8만원 받을 수 있는 일용직을 마다하고 단식 투쟁하는 것은 '나태함'이라 죄책감을 덮어씌워 친구들을 노가다판으로 끌어들였다. 혼자 벌어서는 술판을 벌이기 힘들었다.

 

이렇게 대학가의 원룸을 십여채 올리고, 철거도 다니고, 날이 궂으면 택배 상하차를 하고, 모 테마파크 사파리에서는 코끼리와 기린집도 짓고, 하천 준설 및 오수관 준설도 다녔다. 그 사이 자잘한 기술도 배우고 일당도 올라서 졸업 전에는 매주 두 번 정도 일나가서 어지간한 편의점 주간 풀타임 근무만큼 벌었다. 이때부터 어렵고 힘들어도 돈을 더 벌 수 있으면 궁상맞게 아끼는 것보다 더 벌어 더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중국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 당시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 뉴스가 나올 무렵, 아이는 걸음마를 떼고 있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가장의 고민도 깊어진다는데, 나는 그냥 탄탄대로 같았다. 애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될 즈음엔 매달 지금 월급에서 2~300만 원 정도는 더 벌 것 같았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COVID-19 대유행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John Lee 대표가 말하는 "금융 문맹" 이었다. 회사일에 정말로 올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올인에 고맙게도 가파르게 월급을 올려 준 회사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주어서 지출 증가를 얼마든 앞지를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2020년 3월, 중동에도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고 회사의 매출도 수직 낙하했다. 회사는 생존을 위해 인원을 감축하고, 재택/순환 근무를 돌리면서 인건비 절감을 시작했다. 

 

나는 설상가상으로 상사와의 갈등으로 모든 목표를 달성 혹은 초과 달성했음에도 1등급 대신 3등급을 받는 인사고과 상 불이익도 받았다. 감정 관리에 문제가 있는 해당 상사의 고성과 폭언을 모두 감내 해 왔지만, 입사 이래 줄곧 고과를 1등급으로 받아온 나로서는 당시 자존심에 큰 상처여서 따졌다. 그로부터 "성과는 인정하는데 그동안 잘 받아왔으니 양보" 하라는 해명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렇게 받은 3등급으로 결국 승진에서도 밀려났을 때, 나는 퇴사를 각오하고 변호사를 알아보다가 문득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오만했고 어떻게 실패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실패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사내 정치가, 아니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이 내 생각보다 훨씬 중요했다. 나는 늘상 일을 더 잘하면 그만이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사내정치로 개인 역량 부족을 메꾸려는 일종의 부정행위로까지 비하했다. 특히 그런 동료나 부하직원이 업무 처리가 미숙하거나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팀장은 성향이 나와는 정 반대였다. 그는 "내 뒤로 줄을 서라, 내 그늘로 들어오라" 등의 표현을 조카뻘이 되는 내게 수 차례 할 정도였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그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가졌고 굳이 이를 숨기려 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매우 불쾌할 것이고 반드시 보복할 것을 알았지만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고 가능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오만한 우월감에 도취되었다. 그 결과로 나는 승진 누락과 동결 수준의 연봉 인상을 감내했다. 

 

더 중대한 실패는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업장 폐쇄로 재택 근무를 하면서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 특히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새로웠다. 출퇴근할 때 잠자는 모습만 힐끗 보던 아이가 하루 종일 뭘 하고 지내는지 바라보는 그 매 순간이 감사하리만치 행복했다.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닌데, 주객이 전도되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매 순간의 행복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해 왔다. 그렇게 사무실에 처박혀 일만 해온 스스로가 불쌍했고, 묵묵히 내조한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가지기 전에도 아내가 고대하던 여행을 결심 할 때, 친한 언니와 돈 걱정 없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가계 형편임을 안도하는데 그쳤고, 일을 조금 미루고 함께 다녀 올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있고, 남들보다 많이 벌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고속 승진과 연봉 인상에 다른 모든 것들을 함몰시켜 버리고는 성공적인 삶이라 오판했다. 

 

이제 어쩌지

성장 한계를 체감한 지금, 이제와서 태세를 전환하여 누군가의 그늘에 들어가거나 줄을 선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 무턱대고 퇴사하여 귀농이라도 할 까? 아내는 벌레를 그렇게 싫어한다 그동안 받은 급여를 모두 합산 해 보니 적지 않은 액수인데 다 어디로 갔는지 차를 바꿨지 꼴랑 잔고는 2천만원이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의 부재는 거의 확정적으로 불행을 가져온다.

 

지출은 늘어가는데 회사에서는 더 이상 전과 같은 연 10%, 20%의 급여 인상을 바랄 수 없다. 처음에는 부업을 고민했다. 10년 전 대학 시절 과제물을 업로드 해 둔 캠퍼스에서 단돈 몇만 원이라도 판매 수익이 나온 것을 보고는 육아 퇴근까지 하고 나서 매일 한두 시간 씩 투자해 나름 거창한 에세이를 올렸는데 시원찮다. 사실 1년 동안 하나도 안 팔렸다 꾸준히 만들어 올리면 수익이 발생하기야 하겠다만 낮은 ROI는 둘째 치고 집으로 야근 장소만 옮겨오는 꼴이 된다. 

 

다시금 돈을 더 버는 것에 한계를 체감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지금의 행복을 영위할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근로의 메커니즘은 노동 행위 자체가 즐겁고 자아실현이라 행복과 맞닿지 않은 이상 현재를 불행하게 만든다. 시간은 금수저든 흙수저든 누구에게나 공평한 귀한 자산이다. 결국 우리네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자녀의 시급을 올리기 위함이었나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약 몇 개월 바둥거리는 동안, 구글의 알고리즘은 내게 로버트 기요사키의 인터뷰 영상 하나를 추천했고, 거기서 처음 "Types of Income (소득의 유형)" 개념을 접했다. 잠을 자는 사이에도 돈을 번다니, 훈민정음이 반포 된 감격이었다. 그러나 부동산은 2천만 원 가진 해외 거주자에게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이때 John봉준 님이 유튜브에 등장하셨다. 재난지원금이 다 주식시장으로 들어가는지 동학 개미 운동이라고 한국은 난리란다. 그래서 나도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2021년 1월 고점에서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블로그 개설 동기

매수만 하면 다 돈을 버는 것 같던 분위기와 다르게 내가 사면 항상 떨어졌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 주 동안 떨어졌다. 이제는 몇 달째인 기업도 있다 그래서 주식 관련 게시물을 헤메이며 나름의 공부를 하던 중 나오는 게시물들이 대체로 두 가지로 분류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봐도 모르는 차트 분석은 아예 뺐다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분들의 수익 인증, 그리고 나처럼 이제 막 뛰어들어 앞으로의 포부를 적은 글. 물론 후자에 해당하는 게시물이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몇 년이 지난 최초 게시물로부터 관련 후속 포스팅이 꾸준한 경우는 드물었다. 

 

대체로는 사회 초년생이 애플 주식 1주로부터 0.2달러의 배당을 받아 감격하고 앞으로 월 배당 1천 달러를 달성하여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겠다는 식이다. 그가 애플을 5주 더 사려고 알바를 했는데 주가가 올라 4주밖에 못 사서 개운하지 않다거나, 어느 가장이 삼성전자를 매달 5주씩 더 사기 위해 술을 끊었는데 삶이 팍팍해서 3주씩 사는 것으로 조정했다던지 하는 이야기가 없다. 꾸준히 몇 년이 지나 정말 배당금으로 마트에서 장보는 돈 정도는 충당된다는 이야기도 찾기 어렵다. 

 

그러다가 갑자기 월배당 6천달러 인증이 튀어나온다. 일단 시작해 봤는데, 옆에서 같이 뛰고 있는 사람은 없고 그냥 누군가 저 멀리 날고 있다. 나는 매달 6천 달러가 입금시켜주는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그 매수 자금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경제적 자유나 은퇴를 이야기 할 만큼 자산을 키울 수 있는 것일까? 결국 답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답을 찾아가는 오랜 여정 동안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솔직히 기록하여 스스로를 성찰하고, 혹시라도 나처럼 혼자 답을 찾느라 외롭고 심심한 분들이 가끔 기웃거리며 안줏거리라도 삼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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