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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착한 암은 없다

CANCER LOG

by RyanDaddy 2021. 8. 2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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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은 대개 진행이 느리고 예후가 좋은 편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착한 암"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여기에 최근 20년 전후로 갑상선암 사망자 숫자에는 별다른 증감이 없는데 갑상선암 진단 건수가 늘어난 점을 가지고 암이 아닌 것을 암이라고 과잉 진단한다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금만 검색해도 "갑상선암은 그냥 둬도 된다", "갑상선암은 사실 암이 아니라더라", "보험사와 제약회사 의사들 간의 짜고 치기" 음모론까지 나온다. 

 

내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위해 직장 상사에게 병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처음 들은 말이 "사실 갑상선암은 원래 암이 아닌데 의사들이 돈 벌려고 속이는 것"이라는 황당한 말이었다. 

 

그래서 투병기를 계속 이어가기 전에 갑상선 암에 대한 "팩트 체크" 차원에서 본 포스팅을 해 본다.

 

이 기사 본문에 어떤 의사도 "그냥 둔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기자는 왜 기사 제목을 이렇게 쓴 걸까?

 

갑상선암은 착한 암?

갑상선암은 갑상선에 생긴 암이라는 말일 뿐이고 세포의 종류나 성숙도에 따라 분류가 다양하다. 불행히도 모든 갑상선암이 진행이 느리고 예후가 좋은 것은 아니다. 전체 갑상선 암 진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특정 한 종류, 바로 갑상선 유두암(Papillary thyroid cancer)이 예후가 좋고 수술이 쉬워 치료가 용이 한 것일 뿐이다.

 


치료가 수월하고 예후가 좋다고 "착하다"는 인격적 평가까지 암에 부여했다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고 예후도 아주 안 좋은 "악한 암"은 뭘까? 최악의 암도 바로 갑상선 암이다. 갑상선 미분화암은 암세포의 성장과 확산이 너무 빨라, 언제 발견 했든 수술을 시도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다수의 환자가 3~6개월 내 사망할 만큼 극단적인 예후를 보여 병기를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하고 모두 4기로 진단한다. 사형 선고라는 극단적 비유로도 부족한 갑상선 미분화암은 대개
그 "흔하고 착하다는" 갑상선 유두암을 오랜시간 그냥 묵혀둔 경우로부터 변이 되어 발생한다.

 

암이 아닌데 암으로 과잉 진단? 

초음파 영상 기술의 발달과 정부의 암 조기진단 사업으로 2000년대 즈음에 모든 병원에서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값싸게 포함시켰다. 갑상선 유두암은 초기에 아무 증상이 없고 멍울도 만져지지 않아 초기 갑상선 유두암 환자가 갑상선 검사를 받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갑상선 초음파 검사 보편화되자 예전에는 암이 더 진행되어 음식을 삼키기 불편하다거나 하는 증상이 나타나야 발견 것을 조기에 찾아내기 시작했다. 

 

2015년 네이처(the Nature)지 에서 "모든 암에 대해 초기 진단이 목숨을 살린다" (Screening saves lives for all types of cancer)는 믿음이 꼭 그렇지 않다는 예를 들면서 "한국은 갑상선암을 가장 빨리 진단해 내지만 갑상선암의 사망률은 변하지 않았다"라고 언급했다. 

 

문제는 갑상선 유두암은 2기나 3기에 발견되어도 생존율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 다는 것이지 이걸 가지고 갑상선암은 놔둬도 죽을병이 아닌데 돈에 눈이 먼 의사들이 과잉 진단하여 수술을 강요한다거나, 심지어 암이 아닌 양성 종양을 암이라고 속여 멀쩡한 갑상선을 잘라내고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게 만들었다거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호르몬제를 만드는 제약회사와 짜고 치고 있다는 식의 끝없는 음모론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애초에 초음파만 보고 암 진단을 하는 경우가 어디있단 말인가? 암 확진은 실제로 암세포가 확인되어야 할 수 있다. 나는 2018년에 4mm였던 혹이 3년 뒤 9mm로 커졌고, 형태가 전형적인 갑상선 유두암으로 의심되어 조직검사를 하여 암 확진을 받았다. 

 

조직검사는 쉽게 말해 목에 바늘을 찔러 넣어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까지 뚫고 들어가 그 조직을 채취하는 것이다. 충분한 양의 조직이 채취될 때까지 수 차례 반복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 중요한 혈관과 신경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피해 바늘을 종양 부위까지 도달시켜야 한다. 국소 마취를 받지만 그렇다고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고,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 침을 삼킬수도 없다. 나는 종양의 위치가 동맥 바로 옆이라 검사하시는 의사 선생님께서 애를 먹으셨고 위 과정을 총 3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이 결코 환자에게 유쾌하지 않고, 의사나 환자나 위 과정의 리스크를 감내하였는데 혹여나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초음파 영상으로 관찰되는 5mm 이하의 갑상선 종양은 대부분의 경우 암이 아니다. 그래서 종양이 발견되어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암일 수 있다는 의심이 충분해지는 경우에만 확진을 시도한다. PCR 테스트처럼 마구 쑤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5mm 이하의 종양은 일단은 지켜보는 것이 가이드라인이나, 이게 어떻게 "그냥 둬도 된다"로 와전되고 그걸 또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네이처지의 "조기 진단에도 한국 갑상선 암환자 사망률에 별 차이 없다"는 이야기도 가려 들어야 한다. 갑상선암 수술 후기를 잠깐만 찾아봐도 작을 때 좌우 갑상선엽 중 절반만 절제 할 수 있었는데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놔둬도 된다더라", "착한 암이래" 라는 "카더라" 를 믿고 수술을 미루다가 전절제하게 된 사례가 흔하다. 

 

나는 9mm 크기의 암이 확진 되지마자 당장 수술 일정을 잡아 한달 뒤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부위 회복 과정이 궁금하여 검색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의 수술 후기를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우선 많은 사람들의 절개 흔적이 내 경우보다 컸고, 암이 커져 전절제를 받거나 림프절 전이가 있어 청소술(림프절을 모두 긁어냄)을 받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성대를 침범하여 성대 일부를 깎아내어 목소리가 변한 사람도 있었다. 영상으로는 안 나왔는데 열어보니 전이가 있어 수술에 애를 먹은 의사의 집도 후기(?)도 있었다. 

 

수술 흉터나 목소리 걱정이 아니다. 암이 퍼져 칼을 댈 곳이 많으면 그만큼 크게 열어야 하고, 떼어낸 곳이 많을 수록 회복도 더디지 않겠는가? 대다수 분들이 3~4일 입원하시고, 일주일을 입원해 있던 분도 있었다. 나는 수술 다음날 아침 퇴원하여, 점심 먹기전에 반려견 산책을 시켰고 수술한지 6일째 되던 날부터 아침 조깅을 재개했다. 

 

조기 진단과 시기 적절한 치료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갑상선 암이 착한 암이 되려면 조기에 진단하여 치료해야 한다. 

 

갑상선 유두암은 좌/우 갑상선엽 중 한 곳에 국한된 초기에 수술하면 양쪽 중 암이 있는 곳만 절제(반절제) 할 수 있고, 남은 반쪽의 갑상선에서 계속 갑상선 호르몬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수술로 절반을 떼어내기 전 수준에 가깝게 회복 된다. 이러면 약으로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은 불과 2~3개월 동안일 수도 있다. 늦게 수술하여 반대편으로 암이 번져 양쪽을 다 절제하여 평생 매일 호르몬을 약을 먹는 것과는 삶의 질이 다르다.

 

"착하니까 그냥 두는" 기간이 길어지면 흔히 림프절을 따라 전이되고 더 두면 성대나 식도로, 계속 방치되면 폐로 전이될 수 있다. 이렇게 전이 된 부위는 모두 절제 해야 하는데 수술 부위가 커지면 회복도 오래 걸리고 합병증이나 후유증의 위험도 커진다. 

 

제때 건강검진을 받고, 혹시 뭔가 나왔다면 넘쳐나는 '카더라'에서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보면서 치료를 미루지 말고, 전문가에게 빨리 치료를 맡기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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