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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슬람에서는 왜 돼지고기를 금할까?

inside MIDDLE EAST/이슬람 문화

by RyanDaddy 2021. 7. 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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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음식에 대한 금기

우리는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길어야 몇 주 밖에 살 수 없습니다. 식욕은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존 본능과 직결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으로 식욕을 억누르고 스스로 먹는 행위를 통제하는 행동을 종종 하는데, 고대로부터 이는 대체로 종교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 한 뒤, 하루 종일 수렵과 채집에 시간을 쓰지 않게 되면서 철학적 사고가 발달했고 당장의 먹을 기회를 포기하더라도 정신 수양, 신념의 실천과 같은 철학적인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먹는 것을 제한하거나 일부 포기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승려들은 살생을 금하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살생을 수반 할 수밖에 없는 육식을 하지 않고, 이슬람뿐 아니라 유대교와 기독교에도 원래는 일정한 금식 기간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고 이슬람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요. 식재료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한국인에게는 갸우뚱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단순히 문화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 이들이 우리와 "다름"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돼지고기는 이슬람 뿐 아니라 대체로 중동 전 지역에서 금기

그러나 순수한 탐구심에 기반하여 주제의 의문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힌두교는 소를 신성시하고, 이슬람에서는 돼지를 불결하다 여겨 먹지 않는다지만 어디 종교와 문화적 특성이 환경적, 역사적 배경과 근거 없이 그냥 생겨나는 경우가 있던가요?

 

돼지고기는 이슬람 뿐 아니라 중동에서 먼저 발생한 유대교에서도 금지(구약 성서)되어 있습니다. 돼지는 부정하니 먹지도 말고 만져서도 안 된다고 분명히 명시(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 되어 있지요. 그러나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이슬람보다 먼저 생겨난 기독교는 유럽으로 건너가서 국교가 되었음에도 유럽인들은 돼지를 키우고 그 고기를 먹었으며 돼지를 주 재료로 하는 많은 음식들을 발전시켰습니다. 유럽의 돼지는 부정하지 않다는 계시나 해석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유럽인들은 성서에 손대지도 말라고 명시된 돼지를 먹었을까요?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Schweinshaxe, 사진만으로도 맥주가 생각 남!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종교 개혁을 하면서 성서의 내용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지만 슈바인스학세는 덜 부정했던 것인지.. 이베리아 반도를 800년만에 이슬람으로부터 탈환한 기독교 왕국 스페인에는 지금도 기독교(가톨릭) 인구가 비율이 90%가 훌쩍 넘는데 하몽은 어떻게 된 것인지.. 한국에서 삼겹살은 무신론자들만 먹는 것인지..

 

혹시 중동의 지역과 기후적 특성이 "돼지를 먹지 않는 편이 낫다"라고 규칙을 정하도록 만든 게 아닐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지요? 그래서 이슬람 국가에서 10년을 사는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중동에서(이슬람뿐 아니라 유대교에서도) 돼지고기가 금기시되는 이유를 탐구했습니다. 레바논에서는 식탁에 베이컨을 올려놓고 아침 식사 내내 무슬림 동료와 돼지 이야기만 한 적도 있어요.

 

레바논은 기독교 인구가 많아 5성 호텔에서는 드물게 간단한 돼지고기 관련 메뉴를 제공 (사진은 베이루트의 힐튼 호텔)

 

모범 답안은 "알 수 없음"

그러나 이에 대한 무슬림들의 대답은 "신께서 꾸란을 통해 먹지 말라고 금했기 때문"으로 한결같습니다. 이유는 중요치 않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닐까라고 유도 심문(?)을 해도 제 추론에 대한 존중은 보이더라도 절대로 동의나 부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무슬림에게 꾸란의 내용, 즉 신의 계시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같은 이유로 이슬람을 깊이 이해하는 분들 역시 "이래서 안 먹는다"라는 확언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자가 이슬람 관련하여 석사 이상의 학위가 있다면 그 어떤 국문 출판물에서도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유를 찾을 수 없고 그 교수님들을 만날 수 있는 관련 전공 학과가 개설된 대학에서도 교수님들은 제게 그랬듯  "돼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않으실 겁니다. 이는 특히 이슬람이 유달리 교리에 변화가 없고 그 해석이 매우 엄격히 제한되는 특성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팅을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는 금기는 없다

아무튼 그래도 우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슬람에서 허용된 것은 "할랄", 금지된 것은 "하람"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것이 하람인지 꾸란에는 자세히 명시되어 있고 그 밖의 모든 행위는 허용됩니다. 대표적인 하람으로 "술"을 들 수 있겠지요. 15세 이상 인구 1명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이 세계 2위를 기록한(2016년, 연간 14.4L) 우리나라 사람들도 술이 금지 된 이유가 이성을 마비시켜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돼지는 왜 하람이 된 것일까? 꾸란 2장에는 다음과 같이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언급이 나오고 5장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육류의 도살 방식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부여한 양식 중 좋은 것을 먹되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만을 경배하라.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그러나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먹을 경우는 죄악이 아니라 했으니 하나님은 진실로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신 분이니라." - 꾸란 2장 172-173절

 

"하나님의 이름으로 잡지 않은 것, 목졸라 죽인 것, 때려잡은 것, 떨어뜨려 죽인 것, 서로 싸우다 죽은 것, 다른 야생동물이 먹다 남은 고기, 우상에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 화살로 점을 치기 위해 잡은 것 등은 먹지 말라" - 꾸란 5장 3절

 

앞서 언급했듯 이슬람 이전에도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돼지고기가 금기시 되었는데 세 종교의 공통점은 모두 중동에서 발생한 종교라는 것인데요. 재미있는 부분은 이 금기가 유럽으로 건너가자 얼렁뚱땅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즉 돼지가 절대적인 기준으로 부정한 동물이어서가 아니라 중동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하지요.

 

이슬람에서 특히 구체화 되어 있는 육류의 도살 방법을 보면 힌트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경동맥을 끊어 거꾸로 매달아 피를 모두 빼내어 잡습니다. 잔인하게 보여질 수도 있지만, 중동의 고온 건조한 환경에서는 이렇게 피를 최대한 제거하고 고기의 훼손을 최소화해야만 고기를 오래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피를 빼내기 위해서는 산 채로 경동맥을 끊어야 하고, 때려잡거나 떨어뜨려 죽이면 내상으로 인해 배설물 등으로 고기가 오염될 수 있겠지요? 이전부터 이어오던 최적화 된 도축 방법에 이슬람 이후에 가축의 머리를 메카 방향으로 돌리고 칼을 대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으로"라고 기도를 한다든지, 우상에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배제한다든지 하는 종교적인 조건이 추가되었을 뿐이죠. 

 

돼지는 중동 지역에 적합하지 않은 가축이었다

돼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슬람교가 출현한 7세기 훨씬 전부터 중동의 페니키아·이집트·바빌로니아 문명에서는 돼지 혐오 문화가 발견 됩니다. 소, 양이나 염소 등의 반추동물(되새김질 하는 동물)은 섬유소가 많아 아무리 끓여도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질긴 풀이나 관목을 먹을 수 있으며 이 가축들은 잡아서 고기를 먹을 수도 있지만 젖을 짜 발효시키면 사막에서도 장기 보관할 수 있는 훌륭한 단백질 보충원이 됩니다. 쟁기를 끌 수 있어 농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돼지는 반추동물처럼 거친 먹이를 먹을 수 없어 인간이 먹는 작물과 같은 식량을 나누어야 합니다. 털이 적어 주기적으로 피부에 수분을 보충해 줘야 하여 고온 건조한 중동 기후에는 맞지 않고, 물을 찾아 유랑하는 유목민의 생활에도 부적합합니다. 키울 수 있는 곳이 매우 제한적인데 (현대에도 나일강을 낀 이집트로 한정) 현대에는 공장식으로 사육하고 냉동/냉장 유통 체인이 발달하여 이런 문제들을 극복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에는 방법이 없었겠지요. 키우기에도 경제성이 없고 어렵사리 염장 된 고기를 구해오더라도 이런 기후에서는 쉽게 부패하여 먹는 족족 탈이 나는, 그야말로 쓸모없는 동물인 것이죠. 아래 방목 환경을 사진을 비교 해 보면 양이 왜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선호 가축이고 돼지는 기피 대상이었는지 답은 더욱 명료해집니다.

 

(좌측) 전형적인 아랍의 양 방목, (우측) 영국의 돼지 방목 농장

 

그러나 위의 논리는 또 한 가지의 의문을 남깁니다. 유럽으로 건너간 기독교에서는 돼지 혐오가 사라졌는데 돼지를 키우기 적합한 동남아시아로 건너간 이슬람은 왜 여전히 돼지를 금기시할까? 이 내용은 앞서 언급한대로 별도의 포스팅을 통해 정리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무튼 중동에서 전혀 돼지고기를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는 전국을 통틀어 딱 두 곳뿐인 돼지고기 정육점이 있어요. 그나마 그 두 곳도 같은 기독교인 사장이 운영하는 본점과 지점입니다. 1천 명도 안 되는 교민들이 얼마나 찾아주셨으면 우리말로 "삼겹살"을 주문하면  알아들을 정도지요.

 

앞으로는 이런 중동 현지 생활 관련 소소한 모습들도 포스팅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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